성령 안에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성령 안에 거한다'는 표현을 들을 때, 많은 이들은 막연한 경건함이나 뜨거운 감정, 혹은 신비로운 체험을 떠올린다. 그러나 성경은 성령의 임재를 단지 감정이나 체험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은 ‘관계’이며, 더욱이 ‘친밀한 사귐’이라는 단어로 설명되어야 한다. 이 친밀함은 단지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실제적이고 일상적인 교제 속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응접실의 하나님'이 아니다

많은 신자들은 하나님을 마치 특별한 때에만 찾아가는 왕궁의 응접실에 계신 분으로 여긴다. 특별한 장소, 특별한 시간, 특별한 기분이 들어야만 만날 수 있는 분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영광의 보좌에 앉아계시지만, 복음의 가장 놀라운 진리는 그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성령 안에 거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살아간다는 뜻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는 그분과 '거하는'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 관계는 방문자와 집주인의 관계가 아니다. 거주자와 사랑받는 가족의 관계다.

▍사귐의 영, 성령

요한일서 1장 3절은 말한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여기서 '사귐'(코이노니아, κοινωνία)은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삶을 나누는 교제를 의미한다. 즉,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과의 ‘지식적 연결’이 아니라 ‘존재적 교제’로 이끄시는 분이다.

성령 없이도 우리는 신학을 공부할 수 있다. 설교를 할 수도 있고, 성경 지식을 외울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귐을 나누는 삶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성령은 하나님 자신의 영이시며, 그분은 하나님과의 사귐을 현실로 만들어내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분 없이의 신앙은 껍데기일 뿐이며, 껍질을 꽉 움켜쥔 채 생명을 놓치는 슬픈 일이다.

▍성령 안에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삶'

성령 안에 거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루에 기도 몇 분 더 하고, 성경을 몇 장 더 읽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을 항상 나의 인생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것, 다시 말해, 하나님을 내 삶의 모든 순간마다 의식하는 삶이다.

의식은 사랑의 표현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그의 존재를 의식하게 된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가 지금 하는 말과 행동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우리는 이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진다.

마찬가지로, 성령 안에 거하는 사람은 자신이 지금 하나님의 눈 앞에 있다는 사실을 늘 인식하며 살아간다.
그는 질문한다.
“주님, 이 길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입니까?”
“이 말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요?”
“이 선택이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는 않습니까?”

이러한 지속적인 인식과 민감함이 바로 성령 안에 거하는 삶이다.

▍하나님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귀

하나님은 폭풍처럼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 속삭이시는 분이다. 엘리야 선지자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그것은 큰 바람이나 지진이 아니라 ‘세미한 소리’(still small voice)였다.

성령 안에 거하는 사람은 바로 이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이다. 세상의 소음, 자아의 욕망, 감정의 기복에 귀를 빼앗기지 않고,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인식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 음성은 우리를 회개로 부르고, 평강으로 인도하며, 사랑으로 덮는다. 때로는 날카롭게 찌르기도 하지만, 언제나 우리를 살리는 음성이다.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는 바로 ‘성령 안에 거하는 삶’을 통해 길러진다.

▍동행은 위로가 아니라, 방향이다

많은 이들이 성령을 ‘도움의 영’으로만 이해한다. 위로받고, 격려받고, 힘을 얻기 위해 찾는 존재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령은 단순한 위로자가 아니다. 그분은 우리의 방향을 정하시는 인도자이시다.

성령 안에 거하는 삶은 단지 어려운 순간에 위로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의 전 방향을 그분께 맡기는 삶이다.
기도할 때 감동만 받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선택에서 그분의 음성에 따라 결정하는 삶이다.
삶의 나침반이 내가 아니라 성령이 되게 하는 것, 이것이 성령 안에 거하는 삶이다.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성령 안에 거한다는 것은 결국 ‘내 뜻’을 내려놓는 삶이다. 성령께서 임하시고 충만케 하시는 삶은, 자기 주도적 인생을 포기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린 기도,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는 성령 안에 거하는 자의 고백이기도 하다.
그 기도는 고통의 순간에서 나오는 항복이자, 신뢰의 절정이다. 우리가 성령 안에 머물려면, 이 기도가 우리 안에 일상적으로 반복되어야 한다.
"주님, 제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걷게 하소서."

▍사귐은 흘러넘치는 삶을 만든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은 단지 나만을 위한 위안이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열매로 나타난다.
사귐이 있는 사람은 그 입에서 생명의 말씀이 나오고, 그 삶에는 성령의 열매가 맺히며, 그 마음에는 거룩한 분별력이 자라난다.

성령 안에 거하는 사람은 사람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며, 결과보다 순종에 집중한다.
그는 화려한 성공보다, 은밀한 충성을 더 귀히 여긴다.
그리고 그의 삶은 결국,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는 통로가 된다.


▍결론의 묵상: ‘하나님의 마음 속으로 초대받다’

성령 안에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 안에 들어가 사는 삶이다.
그분과 눈을 맞추고, 숨결을 느끼며, 말씀이 단지 명령이 아니라 사랑의 편지로 들려오는 삶이다.
기도가 의무가 아니라 대화의 기쁨이 되고, 고난이 단지 시험이 아니라 동행의 증거가 되는 삶이다.

우리는 더 이상 외부 손님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자다.
아니,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 거하며, 그분과 사귐을 나눈다.
이것이 바로, 성령 안에 거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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